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찰스 스미스 (문단 편집) === [[LG 트윈스]] 시절 === 웨이버 공시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갈 스미스를 붙잡은 건 다름 아닌 LG. 때마침 LG는 장타력을 보강하기를 원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오른손 거포를 더더욱 희망하고 있었다. 스미스가 딱 적임자였던 상황. 그리고 LG로 이적한 스미스는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 타선에 큰 보탬이 되었다. 2000년 최종 성적은 118경기 타율 .288, 35홈런, 100타점이었고, LG 시절 성적만 따지면 42경기 타율 .314, 15홈런을 기록했다. LG 역사에서 최초로 100타점을 넘긴 타자가 된 것은 덤.[* 중간 이적 없이 LG 유니폼을 입고 풀타임을 뛰어 100타점을 기록한 선수는 9년 뒤인 2009년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처음이었고, 이듬해인 2010년 [[조인성(야구)|조인성]]이 107타점을 기록하며 우타자/국내선수 최초의 100타점을 기록함과 동시에 LG 한시즌 최다타점을 경신했다. 현재 LG의 한 시즌 최다 타점은 [[채은성]]과 [[김현수(1988)|김현수]]의 119타점.] 더구나 세이버 스탯까지 들여다보면 LG 시절 성적으로 .314/.386/.660 OPS 1.047이라는 파괴적인 슬래시라인에 wRC+도 165.8이라는 훌륭한 기록이 나온다. 시즌 종합 성적으로 봐도 wRC+ 145.9, OPS 0.971을 기록하며 오히려 전년도보다 상승했다. 똑딱이 타선으로 고민하던 LG로서는 준수한 장사였던 셈. 하지만 결국 그는 시즌 후 LG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점도 있고, 삼성에서와 비슷하게 포지션 중복 문제도 있었다. 본래 LG의 1루수는 서용빈이 보고 있었는데, 1998~1999년 2년간 여러 이유로 서용빈이 이탈하면서 1루 자리는 반쯤 구멍이 뚫렸고 결국 2000년을 앞두고 LG는 서용빈이 복귀했음에도 당시 [[양준혁]]을 트레이드로 영입해 1루 자원이 두 명이 되었다. 삼성에서 [[이승엽]]-[[김기태(1969)|김기태]]로 인해 벌어진 포지션 중복 문제가 여기서도 벌어진 셈. 현재 관점에서 보면 타격 생산성이 가장 떨어지고 2년간 실전 공백이 있었던 서용빈이 벤치로 들어가고 스미스와 [[양준혁]]이 적당히 1루와 지명타자 자리를 나눠먹으면 될 상황이었지만, [[서용빈]]은 1994년의 임팩트가 여전히 남아있는 LG의 [[프랜차이즈 선수|프랜차이즈 스타]]였고, 당시에는 OPS의 개념 자체가 없고 타율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었기 때문에 3할 근처의 타율을 기록하던 서용빈은 가치있는 1루수였다. 물론 당시에도 스미스가 서용빈보다 생산성이 높다은 것은 아는 사실이었지만, 양준혁-서용빈이라는 걸출한 1루수가 둘이나 있는데 굳이 용병마저 1루수를 뽑아야겠냐는 의견이 많았고, 무엇보다 당시 LG 외야는 [[이병규(1974)|이병규]]를 제외하면 전부 수비력이 폭망이라 외야 용병을 구할 필요도 있었다. 우선 양준혁은 삼성-해태 시절 외야수로만 뛰었지만 지명타자로 나온 시즌이 꽤 많은데서 보이듯 외야 수비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물론 삼성에 수비라 걸출한 외야수들이 많이 거쳐간 탓에 저평가받은 탓도 있지만 타격적 명성에 비하면 아쉬웠던 편. 1루 수비는 포구는 뛰어났지만 본인의 신체 능력을 살려서 본 수비지 수비 스킬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용빈이 1루수로 나온 것이고. 그리고 [[김재현(1975)|김재현]]. 그 양준혁이 코너 선 [[이순철]]로 보일 정도로 답이 없었다. 2001년까지는 고관절 부상을 당하기 전이었는데도 김재현에 수비에 대해 눈이 썩는다는(...) 증언이 잇따랐을 정도. 양준혁 좌익수 김재현 우익수로 풀 시즌을 치뤘다가는 이병규가 지쳐 이탈하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로마이어를 영입하고 한동안 좌익수에 세우기도 했고. 이 문제가 해결된 건 2002년 [[박용택]]이 영입되고 [[매니 마르티네스]]가 2년간 LG의 외야를 맡아주며 고관절 부상으로 빠진 김재현의 자리를 대신하며 해결된다. 당연히 엘지가 서용빈을 주전으로 돌린 결과는 실패였다. [[양준혁]]은 이 때문에 지명타자로 돌았으며, .313/.415/.495 OPS .911 wRC+ 144.0 WAR 4.03을 찍었다. 참고로 이 거 지명타자와 1루수만 돌면서 맡았고, 나중에는 1루수를 봤다. 그렇게 밀어주던 [[서용빈]]의 2000년 성적은 .274/.355/.350 OPS .705 wRC+ 87.2 WAR 0.50으로 폭망했다. 100경기 333타석에 보이듯이 나중엔 '''정말 벤치로 갔다.'''[* 서용빈은 복귀한 해인 2000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WAR 1, OPS 800, wRC+ 100'''을 기록하지 못했다.] 또한 LG 이적 후 반 시즌동안 15홈런을 기록한 점도 아쉬웠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조금 비약이 심한 게 말이 반 시즌이지 경기수를 보면 42경기였다. 당시 KBO리그가 132경기를 치렀으니 약 ⅓인 셈인데 그동안 15홈런이면 단순 계산으로 풀타임 48~50홈런 페이스다.[* 참고로 2015년의 [[박병호]]가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30홈런'''을 기록했을 때 6~7월 장타율이 '''무려 8할이다.'''] 페이스가 조금 떨어지는걸 감안해도 40홈런은 기대할 수 있는 성적. 더군다나 대구에 비해 잠실이 훨씬 투수 친화구장이고, LG 시절 42경기에서 스미스의 장타율은 무려 .660이다. 같은 잠실을 썼던 두산의 [[타이론 우즈]]가 2000년 39홈런을 기록한걸 생각하면 스미스의 장타력은 우즈와 맞먹었다. 결국 장타력이 문제된건 아니라는 뜻. 다른 이유로 한화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2001년에 계약했던 [[댄 로마이어]]도 있었다. 당시 로마이어는 1999년 45홈런을 친 적도 있었고, 스미스보다 타율도 조금 더 높았다. 지금 세이버로 보면 로마이어는 에이징 커브로 인해 하락세를 타면서 장타력이 떨어지는게 눈에 선했고, 반면 스미스는 선구안의 개선과 함께 LG 이적 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준 데다가 나이도 로마이어보다 4살이나 어렸지만, 당대 시각에서는 타율이 조금 더 높은 로마이어가 더 낫다고 평가[* 로마이어가 주루플레이가 스미스보다 낫다는 것도 작용했다. 영입 초 LG는 로마이어를 좌익수로 기용했다.]한 것. 여기에 포스트시즌에서 스미스가 부진했던 점도 한몫 했다. LG는 스미스를 포기하고 로마이어를 영입했으나, 결과적으로 로마이어는 노쇠화+잠실크리를 동시에 맞으며 성적이 더 추락했고 당시 LG 감독대행이던 [[김성근]]과 마찰을 빚으며 중도 퇴출되는 바람에 실패한 카드가 됐다. 여튼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렇게 스미스는 한국무대를 떠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